다시 시작하는 개발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다시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내가 다시 코딩을 시작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의식적으로도 하지 않았다.
5년 전, 대학원에서 빅데이터 플랫폼 성능에 대해 연구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빅데이터 플랫폼 엔지니어로 직장을 얻었고, 1주일 뒤에 퇴사를 결심했다. 누군가는 나를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석사 2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아픈 시간이었고, 존재로서 의미와 목적을 잃었던 시간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숨이 막혔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나’와 나를 이루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으니까. 지금 돌이켜 보면 컴퓨터가 아닌 어떤 일을 했어도 나는 똑같이 반응했을 것 같다. 네가 뭐라고 그렇게 존재 따위를 운운하냐고 비난해도 나는 속시원히 대답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꼬여온 실타래의 매듭이 꽤나 버거웠기 때문이다.
모두에게나 인생에 있어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27살의 나에게는 내 ‘존재’ 자체가 문제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면서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막무가내로 퇴사하고 이듬달에 바로 아일랜드로 떠났다.
그렇게 3년 동안 하고 싶었던 영어, 독일어 공부를 하고 문학, 철학, 그리고 예술의 영역으로 나를 내던졌다. 나는 그렇게 나보다 먼저 앞서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수많은 저자들과 대화하며 더 혼란스러운 질문과 동시에 위안을 얻었다. 어차피 존재라는 것, 그 앞에 주어진 인생, 그 힘겨운 무게 앞에 스스로를 구원한 사람은 없다는 것.
3년 전 회사를 그만 둘 때에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지만, 지난 3년간 적어도 삶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 내 삶에도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후로, 나는 나의 길을 가기 위해서 정진 해왔다. 그리고 그 끝에 찾은 일이 여행 가이드였다. 올해 초에 유로자전거나라 이탈리아 지점의 신입 가이드로 발탁됐다. 한 달간 르네상스부터 근대까지의 이탈리아 역사와 미술사, 회화, 조각, 건축, 사조에 대한 공부와 자료를 준비하며 출국 준비를 했다.
2월 마지막 주에 접어들 무렵, 내 마음의 열정, 비행기 티켓, 내가 그토록 중요시 하는 의미까지,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이었고 짐만 싸서 떠나기만 하면 됐다. 나는 그렇게 로마에서의 삶을 꿈꿨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화가들의 그림도 매일 볼 수 있고, 멋진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생각에 기뻤다. 내가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그만두고 걸어온 시간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믿었다.
현실은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셧다운이었다. 내가 쌓아온 시간과 세계도 함께 무너졌다.
그렇게 올해 봄을 몸과 마음이 무너진 채로 마주했다. 이전엔 내 삶을 견디지 못할 만큼 증오하며 원망스럽게 만든 것에 대해 원인을 찾고 그 원인에게 화살을 돌릴 수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화살의 과녁이 ‘나’ 밖에 없었다. 전 세계가 함께 짐을 부담하는 전염병 앞에서 나는 누구를 탓하리.
내가 부족해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내가 잘못 살아와서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 내가 나의 가장 큰 적이다.
코로나는 나에게 죽든가 살든가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이제는 현실 앞에서 도망칠 나이도, 형편도 되지 않는다. 나는 살기 위해서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개발이 좋아서라고는 말 못 하겠다. 그렇지만, 진짜 ‘나’ 로서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먹여살릴 구석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개발이 창조의 과정임을 몸소 느끼려 한다. 이 과정을 기록하고자 2020년 5월 10일, 블로그의 첫 글을 게시한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크게 두 가지 트랙을 다루려고 한다.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무엇을 느꼈는가. 개발 블로그라고 해서, 그저 배운 기술만 나열해 놓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주니어 개발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한 땀 한 땀 기록해 놓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