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지 못 한 자의 면접 후기

Jun
7 min readJan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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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베를린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열심히 구직 중이다. 크리스마스, 새해 연휴 2주를 감안하면, 정확히 3주의 구직활동을 했다. 꽤나 많은 이력서를 보냈고, 대부분은 거절 메일이었다. 그 중 나의 이력과 동기를 알아 본 회사와 면접을 진행했다. 3년간의 경력동안 쌓은 스킬과 정확히 일치하는 Job Description을 보며 나는 매우 설레었고, 설렘이 겸손하지 못 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1차 면접은 HR 면접 이었고, 무난히 통과했다. 해당 글은 2차 면접(SKILLS & MOTIVATION with Hiring Manager & CTO)에서 탈락 후 심경변화와 배운것을 기록하는 글이다.

TLDR

어떤 면접이든, 모든 질문에 경험에 기반 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질문 이더라도.

면접 준비과정과 후기

매우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오만함은 다음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너네가 날 안 뽑을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나의 스킬이 JD에 쓰여져있는 것과 너무나 동일했고 더해서 HR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2차 면접은 SKILLS & MOTIVATION 면접 이었는데, 같이 일하게 될 매니저와 기술 최고 책임자와의 면접이었다. 사실 제목만 봐서는 당연히 내 경력에서 기술과 관련한 질문이 나올거라 예상했다. 내 상식에서는 기술과 관련한 직무를 가진 매니저들과 면접을 보니까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기술과 도전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물을 줄 알았다. 그래서, 기술질문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 내 패착 이었다.

면접을 진행했다. 여기와서 알게 되었는데 Good Cop, Bad Cop 이라는 전략이 있더라. 인터뷰어 중 한 명은 좋은 인상을 주고, 한 명은 의도적으로 못되게 구는 역할이다. Good Cop 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지만 우리 둘의 케미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Bad Cop 은 명성답게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고, 내 질문에도 단답으로 대답했다. 심지어 면접이 끝났는지도 정확히 알리지도 않은채 손 제스쳐로 인사를 하고 구글밋을 나가버렸다. 면접 시간도 1시간 정도 계획되어있었는데 45분 밖에 진행하지 않았다. 이게 Red Flag 인가 ? 또는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무례한가? 싶었다.

아무튼 간에 나는 떨어질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떨어트린다면 대체 왜? 나는 질문에도 잘 대답했고, 좋은 에너지를 줬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은 내가 면접 때 받은 질문이다.

- 너 소개 해봐
- 왜 베를린이니?
- 이전 직장 왜 그만뒀니?
- 이전 직장 그만두고 뭐했어?
- 어떤 팀을 찾고있니?
- 전 직장에서 도전적인 것에 대해 말해줘
- 전 직장의 팀은 어땠니?
- 너의 전 매니저가 나에게 충고한다면, 어떤 것을 말해주겠니? (약점에 관한 질문)
- 그럼, 너의 강점은 뭐야?

모두 다 일반적인(generic) 한 상황 질문들이다. 내가 예상했던 질문의 궤와 너무 달라서 조금 당황했지만,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치만 generic 한 질문에 generic 한 답변을 한 것이 실수 였다.

탈락 메일을 받고 나서

면접 이틀 후 탈락 메일을 받았다. 나는 믿을수가 없어서 1차 면접을 진행한 HR 에게 피드백 요청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The feedback I got that your answers were quite generic and they didn’t feel you were the right fit for their department as you would struggle to meet the expectations.

뭐라고? 내 답변이 꽤나 일반적 이었다고? 어이가 없었다. `아니, generic 한 질문을 하는데, 그럼 어떻게 더 답변을 이어나가? 세부적인 질문을 하지 않은 면접관이 잘못 한 거 아니야?`. 한국도 그렇지만, 해외는 더욱 더 피드백이 중요한 문화인 것 같다. 피드백에 defensive(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언제나 red flag(위험 신호)다.

그치만, 오만한 나는 아래의 내용과 같이 메일을 보냈다.

너의 다음 면접을 위해 나도 피드백을 줄게. 남자 면접관은 영어로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 그야말로 질문이 제네릭했고, 알아듣기 어려웠어. 여자 면접관은 Bad Cop 을 연기했다면 그렇다 치자, 그게 아니라면 예의로라도 친절함을 갖춰야 해.

그랬더니, 피드백 고맙고 행운을 빈다고 답장 메일이 왔다. 허무했다.

다시 고찰하기

메일을 보내고, 이제 잊고 할 거 하자 라는 마음으로 Dynamic Programming 문제를 풀고 있었다. 마침 해당 알고리즘은 재귀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건데, 큰 문제를 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보면된다. 전혀 집중이 안됐다. 지난 면접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반응 하는게 맞나? 내가 잘못한건 없을까? 왜 떨어졌을까?

다시 피드백 메일을 열었다. Quite generic. 크게 한 방 맞았다. 맞네, 내 준비가 부족했구나. 한 친구가 내 면접 후기를 듣더니 질문에 대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generic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확했다. 내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프트스킬이 강한 개발자니까, 상황기반 질문은 당연히 잘 할 거라 생각했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이제 깨닫는다. 완전히 잘못하고 있었구나.

저 위의 generic 한 질문들에 나도 곧이 곧대로 generic 하게 답변했다.

Q. 강점이 뭐야?

A1. 나는 팀원들과 어울리고 대화 하는 것을 좋아 해. 지난 직장에서 매 주 기술에 대해 이야기 하는 미팅도 만들었고, 정기적인 커피챗, 산책 같은 활동들을 만들었어

내가 면접관 이어도 안 뽑았을 것 같다. 다시 내 답변을 보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와 같이 이야기 했어야 한다.

A2. 나는 팀원들과 어울리고 대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잘 해. 예를들어서, 지난 직장인 Yanolja 에서 일했을 때, 우리 팀에 클라이언트 로그에 대한 히스토리와 맥락이 없었거든. 이게 나는 팀에 큰 결함 이었다고 생각 해. 우리 팀 매니저 한테 제안했어, 내가 데이터 팀과 미팅을 열어서 알 수 없는 테이블과 칼럼의 의미를 파악하겠다고. 그래서 bi-weekly 미팅을 진행했고 해당 내용을 문서화 했어. 이게 나의 정기적인 태스크가 되었고, 미팅을 하고 매 번 문서로 기록해서 우리팀의 엔지니어와 PO들이 선택을 내릴 때 데이터 접근성을 높였어.

STAR 라는 메소드가 있다. Situation, Task, Action, Result 로 상황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다시 구성한 내 답변은

  • Situation: 클라이언트 로그에 대한 맥락 파악이 어려웠음.
  • Task: 문서화 필요.
  • Action: 미팅 제안 후 문서 작성.
  • Result: 데이터 접근성을 높임.

이렇게 답변을 구성해서 준비했어야 한다.

결론

마음이 꽤나 아프다. 해당 회사와 핏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2차 면접 후 두개의 면접이 더 남아있었지만 빠르게 오퍼를 받고 한국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탈락 메일과 함께 처참히 계획은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당연히 다양한 질문에 준비되어 있어야 했고, 아무리 일반적인 질문 이더라도 나의 경험에 기반한 답변을 구성할 줄 알았어야 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배워야지. 별 수 있나.

친구가 베를린으로 떠날 때 선물 해 준 <생일편지> 안미옥 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목적지를 정하면, 도착할 수 없게 된다.’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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