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취업 결산 그리고 단상

Jun
7 min readMar 16, 2024
Photo by Jeison Higuita on Unsplash

지난 글, 쉽게 될거라고 생각했니?에서 영혼을 담은 기우제에 감동을 받은 우주가 나를 도왔다.

결론은 총 두 군데에서 내 이력과 성장 가능성을 좋게 평가했고, 오퍼를 제안했다.

숫자로 보는 베를린 취업 결산

단위 (개: 회사)
- 지원: 100개
- 면접제안: 9개
- 최종면접: 4개
- 오퍼제안: 2개 + 1개 (오퍼 받기 전 채용과정 드랍)

9% 서류합격, 면접 진행한 회사 중 44% 확률로 최종면접 도달, 최종면접 진행 시 75% 확률로 오퍼 제안을 받았다.

기간으로 보는 베를린 취업 결산

- 퇴사: 2023.10 중순
- 이력서 작성 완료: 2023.10 말
- 알고리즘 공부시작: 2023.11 초
- 베를린 이사: 2023.12.18
- 이력서 지원: 2024.01 중순
- 최종 오퍼: 2024.02 말
- 계약서 작성: 2024.03.01

퇴사 하자마자 바로 온갖 레퍼런스와 ChatGPT 를 동원해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11월초부터 자료구조 알고리즘 스터디를 진행했다. 베를린 오기 전에 일본 여행가서도 매일 진행, 물론 계약서 싸인하고 나서 하루도 안 함. 정작 베를린와서 알고리즘 코딩 테스트를 진행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독일은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일을 안한다. 이력서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피드백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1월 중순이었다. 그 후로, 대략 5주 동안 총 17번의 면접과 3개의 과제를 진행했다.

2024년 3월 1일. 드디어 계약서 썼다. 내가 최종으로 선택한 회사의 오피스는 베를린 도심에 있는 Hackescher Markt 역 근처 쇼핑 지구에 있다. 외관상 2차 세계대전 중에 무너지지 않은 빌딩 이라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지어진 건물처럼 보인다. 오퍼 받기 전, 오피스에 초대 받아서 맥주 한 잔 했는데, 딱 분위기가 베를린에 오기 전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베를린의 젊은 스타트업이다. 앞으로 이 곳에서 어떤일이 일어날지 매우 설렌다.

사무실 가는 길

면접 경험과 그 과정은 지난 5개의 글에서 서술 했으니, 이력서에 싸인하고 난 후 2주간 경험을 공유한다.

블루카드

블루카드 제도는 인력난을 겪는 산업군에 해외 이민자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Residence Permit 과 Work Permit 이 결합되어 있는 비자라고 보면 된다. 생각나는 필요 요건을 적어 보면,

  • 독일에서 지정한 산업군에 종사해야 함 (ex, Mathematics, IT, Nursing, Technology, etc..)
  • 직군과 동일한 독일에서 인증받은 대학 학위
  • 계약서
  • 현재 환율 기준 한화로 대략 세전 6천만원 이상의 계약 연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준)
  • 건강보험 가입 확인서

2024년 3월 1일에 이력서 쓰자마자, 공보험에 가입했다. 정말 골때리는게, 얘네는 모든 정보를 메일로 보내준다. 이메일 아니고, 메일. 리터럴리 편.지. 정말 빡이 친다. 내 여행비자가 정확히 오늘 (2024.03.16) 만료 되기 때문에 나는 편지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서류를 준비해서 블루카드를 신청해야 했다. (비자가 만료 되기 전에 이민청에 비자 신청을 하면 합법적으로 독일에 머물 수 있다고 한다.)

공보험에 가입했더니 이메일을 받았는데, 앞으로 나한테 8개의 편지를 보내겠다고 한다. 이걸 다 기다리면 족히 한 달은 걸린다. 그럼 나는 불법체류자 행.

공보험 핫라인에 전화를 건다.

나: 적히효. 나 너네 보험 가입되었다는 사실 증명서좀.
보험: 아, 그거 편.지.로 보냈어!
나: 않이, 나 그거 기다릴 시간 없는데, 이메일로 보내주면 안될까?
보험: 아, 그럼 해당 업무 담당자 번호 알려줄테니까 월요일에 전화해봐

월요일에 전화했다.

나: 적히효. 나 너네 보험 가입되었다는 사실 증명서좀.
보험: 아, 그거 편.지.로 보냈어!
나: 않이, 나 그거 기다릴 시간 없는데, 이메일로 보내주면 안될까?
보험: 응~ 보안상의 이유로 이메일로는 안되세요^^

진짜, 빡이 쳐, 안 쳐.
편지 기다리다가 불법 체류자 될 것 같아서 무작정 오프라인 지점을 찾아갔다.

나: 적히효. 나 너네 보험 가입되었다는 사실 증명서좀.
보험: 아, 그거 편.지.로 보냈어!
나: 않이, 나 그거 기다릴 시간 없는데, 이메일로 보내주면 안될까?
보험: 아, 너 벌써 두 번이나 전화했네? 그럼 내가 지금 프린트로 뽑아줄게

???

이럴거면, 그냥 이메일로 주면 안되니?

드래곤볼 모으듯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불법 체류자가 되기 전에 블루카드 신청을 완료했다. 신청하고 영업일 기준 10일이 흘렀는데 아직도 내 비자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 현재 상황을 서술해서 메일을 다섯통이나 보냈는데도 답변이 안 온다.

Welcome to the german bureaucracy!

독일어

블루카드 신청을 완료하고,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 지 결정하는데 오랜 고민이 필요 없었다. 블루카드 신청 하자마자 바로 집 근처에 위치한 독일어 학원에 찾아갔다.

지금 내 독일어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문법만 B1 레벨이고 나머지는 A1-A2 중간 어딘가에 있다. 음식점, 카페, 마트에 가서 기본적인 일상 회화만 가능하고 내 생각이나 의사 표현은 못 한다. 그냥 응애 수준.

나: 나 예전에 B1 시험 합격했고, 독일어 수업 듣고싶어
담당자: 아 그래? 그럼 지금부터 독일어로 얘기해볼까?

담당자: *(@!#*(J!KLASDSDZM))!
나: 응애

그래서 A2.2 과정에 등록했다. 인텐시브 수업이라 월-목 오전 매일 세 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오후에 위워크가서 또 세 시간 복습 조진다. 행복하다. 나에게 있어서 언어 배우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황의 압박이 없어도 스스로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다.

영어를 배우고 나서 나의 삶이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확장되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 언어에 대한 나만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나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고, 내가 상상할 수 없던 경험으로 이끄는 것이다.

영어를 습득 하면서 어느 시점부터 문법, 발음보다 진짜 내가 말하고 싶은게 뭐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내가 말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모르면, 소통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연스레 언어는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되었다.

더하여, 경험은 나의 주변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나의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의 폭이 넓고 다양해 진다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경험으로 나를 던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독일어는 그리고 나에게 레고 처럼 놀이의 일종이다. 영어보다 훨씬 다양한 문법을 가지고 있고, 문법과 단어에 사고의 과정이 담겨있다.

예를들면, 한국어에는 조사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장 구성이 가능하다. 맥락에 따라서는 주어도 생략 가능하다.

KOR: 나는 너를 생각해. 너를 생각해. 너를 생각해 나는. 생각해 너를.

ENG: I think of you

GER: Ich denke an dich. An dich denke ich.

영어로는 I think of you 정도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독일어로는 Ich denke an dich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문법을 뜯어보면, denken(생각하다) 동사는 항상 뒤에 an 이라는 전치사를 필요로 한다. an 은 전치사 이기 때문에 당연히 뒤에 명사가 등장해야한다.

독일어에는 한국어의 조사처럼 100% 호환가능하지 않지만 명사의 쓰임새를 표현할 수 있다. 명사의 격(형태) 에 따라 문장 안에서 주어인지 목적어인지를 구분 할 수 있다. 또한 목적어인 명사에도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예를 들어 3격 (~에게), 4격(~를) 로 표현 할 수 있다.

an 전치사 뒤에는 3격 (~에게), 4격(~를)형태 둘 다 올 수 있다. 재밌는 점은, 동사에 움직임의 의미가 내포되면 an 뒤에 4격이 온다. 다시 위의 문장을 보자.

KOR: 나는 너를 생각해. 너를 생각해. 너를 생각해 나는. 생각해 너를.

GER: Ich denke an dich. An dich denke ich. (dich = 4격 = 너를)

독일어에 따르면, 생각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인 denken 은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너를 향해 생각한다. 나의 사고가 너를 향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Hast du einen, an den du denkst?

번외

독일어는 또 병맛 가득한 언어다. 독일인들이 괜히 이상한게 아니다.
분리수거함은 독일어로 die Mehrkammerwertstoffsammelbehälter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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